강제추행죄 판례 변경한 2018도13877 판결 요약 및 해설

대법원은 2023년 9월 21일 강제추행죄에서의 ‘폭행 또는 협박’의 의미에 관하여 중요한 판결을 하였습니다. 대법원은 40여년만에 판례를 변경하여 ‘폭행 또는 협박’의 해석에 관한 입장을 변경하였습니다. 오늘은 판례 변경된 부분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변경에 대하여 여러 대법관들 사이에 어떠한 의견의 차이가 있었는지에 관해서 보겠습니다.

대법원 2023. 9. 21. 선고 2018도13877 전원합의체 판결의 판시사항

[1] 강제추행죄의 ‘폭행 또는 협박’은 상대방의 항거를 곤란하게 할 정도로 강력할 것이 요구되지 아니하고, 상대방의 신체에 대하여 불법한 유형력을 행사(폭행)하거나 일반적으로 보아 상대방으로 하여금 공포심을 일으킬 수 있는 정도의 해악을 고지(협박)하는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

[2] 강제추행죄는 상대방의 신체에 대해 불법한 유형력을 행사하거나 상대방으로 하여금 공포심을 일으킬 수 있는 정도의 해악을 고지하여 상대방을 추행한 경우에 성립한다. 어떠한 행위가 강제추행죄의 ‘폭행 또는 협박’에 해당하는지 여부는 행위의 목적과 의도, 구체적인 행위태양과 내용, 행위의 경위와 행위 당시의 정황, 행위자와 상대방과의 관계, 그 행위가 상대방에게 주는 고통의 유무와 정도 등을 종합하여 판단하여야 한다.

 

사실관계와 2심, 대법원의 판단

사실관계

피고인은 방안에서 사촌인 피해자(여, 15세)의 숙제를 도와주던 중 피해자의 왼손을 잡아 자신의 성기 쪽으로 끌어당겼습니다. 피고인은 이를 거부하고 자리를 벗어나려는 피해자를 끌어안은 다음 침대로 넘어져 피해자의 위에 올라탄 후 피해자의 가슴을 만졌고, 방문을 나가려는 피해자를 뒤따라가 끌어안았습니다.

 

2심 법원(고등군사법원)의 판단

2심 법원은 종전의 대법원 판례 취지에 따라 피고인이 한 폭행, 협박이 항거를 곤란하게 할 정도에 이르렀는지 판단하였습니다. 2심 법원은 ‘당시 피고인이 한 말이 아무런 저항을 할 수 없을 정도의 공포심을 느끼게 하는 말이라고 보기 어렵다. 피고인의 행위에 대하여 피해자가 아무런 저항을 하지 않았으므로 피고인의 행사한 힘의 정도가 피해자의 저항을 곤란하게 할 정도였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하였습니다. 2심 법원은 이를 이유로 친족관계 강제추행죄에 대하여 무죄로 판단하였습니다.

 

대법원의 판단

대법원은 강제추행죄에서의 ‘폭행 또는 협박’은 상대방의 반항을 곤란하게 할 정도에 이르러야 한다는 기존의 판례를 변경하였습니다. 대법원은 강제추행죄의 ‘폭행 또는 협박’은 상대방의 항거를 곤란하게 할 정도로 강력할 것이 요구되지 않고, 상대방의 신체에 대하여 불법한 유형력을 행사하거나 일반적으로 보아 상대방으로 하여금 공포심을 일으킬 수 있는 정도의 해악을 고지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판시하였습니다. 대법원은 2심 판결을 파기하고 유죄의 취지로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으로 돌려보냈습니다.

 

변경된 대법원 판결의 의미

변경된 판례의 적용범위

변경된 판결의 의미를 보기 앞서 변경된 판례의 해석론이 적용되는 범위에 관해서 보겠습니다.

강제추행죄는 두 가지 유형으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폭행행위 자체가 곧바로 추행에 해당하는 경우(이른바 ‘기습추행’)와 추행의 수단으로 폭행 또는 협박이 먼저 선행되고 뒤에 추행이 있었던 경우(이른바 ‘폭행협박 선행형’)입니다. 대법원은 기습추행에 관해서는 이미 ‘상대방의 의사에 반하는 유형력의 행사가 있는 이상 그 힘의 대소강약을 불문한다’고 판시해왔습니다. 이번 판결은 폭행협박 선행형 강제추행에서의 폭행 또는 협박의 의미에 관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 사건과 직접 관련되어 있지는 않지만 강간죄에도 이번에 변경된 ‘폭행 또는 협박’의미가 적용될 것으로 보입니다.

 

변경 전 판례의 입장

폭행, 협박에는 정도가 있습니다. 가벼운 폭행, 협박이 있을 수 있고 매우 심각한 폭행, 협박이 있을 수 있습니다.

형법에서는 폭행만을 한 경우에는 폭행죄가, 협박만을 한 경우에는 협박죄가 성립하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폭행이나 협박을 수단으로 하여 저지른 여러 범죄에 관해서도 규정하고 있습니다. 여러 처벌규정에서 말하는 폭행이나 협박이 어느정도의 폭행이나 협박을 말하는 것인지 문제가 됩니다.

대법원은 폭행죄에서의 폭행에 대하여는 ‘사람의 신체에 대한 유형력의 행사’를 의미한다고 판시하였습니다. 협박죄에서의 협박에 대하여는 ‘일반적으로 보아 사람으로 하여금 공포심을 일으킬 정도의 해악을 고지하는 것’을 말한다고 판시하였습니다. 두 죄 모두 폭행, 협박의 범위를 상당히 넓게 해석한 것입니다. 반면 강간죄, 강제추행죄에서의 폭행, 협박에 관해서는 그 정도가 ‘상대방의 항거를 곤란’하게 할 정도에 이르러야 한다고 일관되게 판시하여 왔습니다. 즉, 개별적으로는 폭행죄, 협박죄가 성립할 수 있는 폭행, 협박이라더라도 상대방의 항거를 곤란하게 할 정도에 이르지 않았다면 강간죄, 강제추행죄에서의 폭행, 협박에는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하여 왔습니다(폭행 또는 협박의 의미에 관한 종전 대법원의 판시 내용은 강제추행죄 관련 대법원 판례 모음 (2023년 9월까지)글을 참조하시면 됩니다.

 

변경 후 판례의 입장

대법원은 ‘강제추행죄의 ‘폭행 또는 협박’은 상대방의 항거를 곤란하게 할 정도로 강력할 것이 요구되지 아니하고, 상대방의 신체에 대하여 불법한 유형력을 행사(폭행)하거나 일반적으로 보아 상대방으로 하여금 공포심을 일으킬 수 있는 정도의 해악을 고지(협박)하는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고 판시하였습니다. 즉, 대법원은 강간죄, 강제추행죄에서의 폭행, 협박은 폭행죄에서의 폭행, 협박죄에서의 협박과 같은 의미로 보아야 한다고 판시하였습니다.

이동원 대법관을 제외한 나머지 대법관은 이러한 판례 변경에 동의하였습니다. 다수의 대법관들이 판례 변경이 필요하다고 본 근거는 아래와 같습니다.

  • 강간죄나 강제추행죄의 법조문에는 폭행, 협박이라고만 규정되어 있고 그 정도를 한정하지 않고 있다. 강제라는 것은 자유의사를 억눌러 원하지 않는 것을 억지로 시키는 것을 의미하므로 반드시 항거가 곤란할 정도도 이를 필요가 없다.
  • 원치 않는 성적 행위를 폭행, 협박으로 하게 하였다면 강간죄, 강제추행죄의 보호법익이 침해된다. 피해자의 항거곤란을 요구하는 것은 강간죄, 강제추행죄를 정조에 관한 죄로 정하면서 피해자에게 ‘정조’를 수호하는 태도를 요구하는 과거의 입장을 전제로 하고 있다.

 

이번 대법원 판결의 소수의견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에는 소수의견을 붙일 수 있습니다. 소수의견에는 크게 반대의견, 별개의견, 보충의견이 있습니다. 반대의견은 다수의견과 사건에 관한 결론을 달리 하는 의견입니다. 별개의견은 다수의견과 사건에 관한 결론은 같으나 결론에 이르는 근거는 다른 의견입니다. 보충의견은 다수의견이나 반대의견 등의 덧붙치는 보충적인 의견을 말합니다.

이번 판결에는 1개의 별개의견, 3개의 다수의견에 대한 보충의견이 있습니다. 이번 전원합의체 판결은 판례 변경 자체도 의미가 크지만, 폭행 또는 협박의 인정범위가 넓어짐에 따라 발생할 수 있는 여러 문제를 고려한 소수의견의 주장도 충분히 경청할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대법관 이동원의 별개의견

이동원 대법관은 종전의 대법원 판례를 변경할 필요가 없다는 의견을 밝혔습니다.
이동원 대법관은 종전의 대법원 판례를 유지하여야 한다고 보면서도, 이 사건의 피고인에 대해서는 강제추행죄가 성립한다고 판시하였습니다.
이동원 대법관이 든 근거는 다음과 같습니다.

  • 형법이나 형사특별법은 추행행위를 ‘폭행 또는 협박’으로 한 경우와 그에 미치지 못하는 ‘위력’에 의한 경우로 나누어 규정하고 있다. 기존의 판례를 유지하는 것이 위력에 의한 경우와 분명한 구별이 가능하고, 법률의 체계에도 부합한다.
  • 기존 판례가 피해자의 현실적인 저항을 반드시 요구하였던 것도 아니다.
  • 기존 판례에 의할 때에도 폭행협박의 내용, 경위, 피해자와 관계, 전후의 정황 등을 통해 항거가 곤란할 정도였는지 판단하여 왔다(이른바 ‘종합판단기준설’). ‘종합판단기준설’에 의할 경우 판례를 변경하지 않고도 개별 사건에서 올바른 결론을 내릴 수 있다.
  • 현재 대법원 판례를 근거로 일정 유형의 강간죄, 강제추행죄를 중범죄로 가중처벌하고 있다. 입법에 의하지 않고 해석으로 변경할 경우 법률 체계에 맞지 않고, 과거 사건에 대해서도 그대로 적용되에 되어 형벌 불소급의 원칙에 반하게 된다.

 

대법관 안철상, 노태악, 천대엽, 오석준, 서경환의 보충의견

대법관 안철상, 노태악, 천대엽, 오석준, 서경환은 판례 변경 자체에는 찬성하면서도 변경된 판례에 따르면 강제추행죄의 처벌범위가 지나치게 확대될 위험성이 있다고 보았습니다. 이를 고려하여 강제추행죄에서 ‘추행’의 의미를 ‘그 정도에 비추어 성적 자기결정권을 본질적으로 침해하는 정도에 이르는 경우’로 엄격히 해석하여야 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밝혔습니다. 기존에 신체 부위와 무관하게 강제추행죄가 성립할 수 있다고 판시한 대법원 판례를 변경할 필요성이 있다는 취지로 보입니다. 그리고 강제추행죄를 기습추행형과 폭행협박 선행형을 나누지 않고 일원화하여 통일적으로 해석할 필요가 있다는 등의 의견도 밝혔습니다.

 

대법관 민유숙, 김선수, 오경미의 보충의견

대법관 민유숙, 김선수, 오경미은 대법관 안철상, 노태악, 천대엽, 오석준, 서경환의 의견에 대해서 부정적인 의견을 밝혔습니다. ‘폭행 또는 협박’의 의미가 쟁점이 된 이 사건에서 ‘추행’의 의미에 관하여 설시하는 것은 다수의견의 보충의견으로서 적합하지 않고, 의견에 대하여도 동의할 수 없다는 취지의 의견을 밝혔습니다.

 

대법관 노정희의 보충의견

대법관 노정희는 다수의견과 의견을 같이하면서 판례변경에 반대하는 이동원 대법관의 별개의견을 반박하는 내용의 의견을 밝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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