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불속행 기각이란? 요건과 실제 비율

2심 판결에 대하여 항소하는 것을 ‘상고’라고 합니다. ‘심리불속행 기각’은 상고한 사람이 하는 주장에 상고심절차에 관한 특례법(이하 ‘상고심법’)이 정한 사유가 포함되어 있지 않는 경우 대법원이 더 이상 심리하지 않고 상고를 기각하는 것을 말합니다. 오늘은 심리불속행 기각의 요건과 심리불속행 기각 판결이 내려지는 비율에 관해서 보겠습니다.

대상이 되는 사건

대법원이 심리불속행 기각 판결을 할 수 있는 사건은 민사소송, 가사소송 및 행정소송, 특허소송입니다(상고심법 제2조). 형사소송은 심리불속행 기각 판결의 대상이 아닙니다.

다만 형사소송의 경우 상고인(상고를 한 사람) 주장이 형사소송법에서 정한 상고이유에 해당하지 않는 것이 명백한 경우 판결이 아니라 결정으로 상고를 기각할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형사소송법 제380조 제2항).

심리불속행 기각의 요건

심리불속행 기각 사유

상고심은 법률심입니다. 상고는 ‘판결에 영향을 미친 헌법, 법률, 명령 또는 규칙의 위반’이 있을 때에만 할 수 있습니다(민사소송법 제423조). 대법원도 원칙적으로 그러한 주장에 대하여만 판단할 수 있습니다.

대법원에 상고된 사건은 아래와 같이 크게 세가지로 분류해볼 수 있습니다.

  1. 법이 정하고 있는 상고 절차를 준수하지 못한 부적법한 상고
  2. 상고절차는 지켰으나, ‘판결에 영향을 미친 헌법, 법률, 명령 또는 규칙의 위반’에 관한 주장 자체가 없는 상고
  3. 법이 정한 상고절차를 준수하고, ‘판결에 영향을 미친 헌법, 법률, 명령 또는 규칙의 위반’에 관한 주장이 있는 상고

심리불속행 기각 제도는 위 세가지 분류 중 2번째 유형의 사건에 관하여 신속하게 사건을 종결 할 수 있도록 만든 제도입니다. 심리불속행 기각 대상인지 여부를 가리는 결정적인 기준은 상고인이 주장하는 상고이유에 ‘판결에 영향을 미친 헌법, 법률, 명령 또는 규칙의 위반’에 관한 주장이 포함되어 있는지 여부 입니다.

‘판결에 영향을 미친 헌법, 법률, 명령 또는 규칙의 위반’이라는 문구는 추상적입니다. 상고심법 제4조는 어떠한 경우가 ‘헌법, 법률, 명령 또는 규칙의 위반’에 해당하는 지 보다 구체화하고 있습니다.

  1. 원심판결(原審判決)이 헌법에 위반되거나, 헌법을 부당하게 해석한 경우
  2. 원심판결이 명령ㆍ규칙 또는 처분의 법률위반 여부에 대하여 부당하게 판단한 경우
  3. 원심판결이 법률ㆍ명령ㆍ규칙 또는 처분에 대하여 대법원 판례와 상반되게 해석한 경우
  4. 법률ㆍ명령ㆍ규칙 또는 처분에 대한 해석에 관하여 대법원 판례가 없거나 대법원 판례를 변경할 필요가 있는 경우
  5. 제1호부터 제4호까지의 규정 외에 중대한 법령위반에 관한 사항이 있는 경우
  6. 「민사소송법」 제424조제1항제1호부터 제5호까지에 규정된 사유가 있는 경우(법률에 따라 판결법원을 구성하지 아니한 때, 법률에 따라 판결에 관여할 수 없는 판사가 판결에 관여한 때, 전속관할에 관한 규정에 어긋난 때, 법정대리권ㆍ소송대리권 또는 대리인의 소송행위에 대한 특별한 권한의 수여에 흠이 있는 때, 변론을 공개하는 규정에 어긋난 때)

상고인의 주장에 위 6가지 유형에 해당하는 것이 없는 경우 심리불속행 기각 사유가 됩니다. 또한 위 6가지 유형에 해당하는 주장이 있는 경우에도, ① 주장 자체로 보아 타당하지 않거나, ② 주장이 2심 판결 내용과 무관한 것이거나, ③ 주장이 받아들여지는 경우에도 원심판결의 결론에 영향이 없는 경우에는 심리불속행 기각 판결이 내려질 수 있습니다(상고심법 제4조 제3항).

정리하면, 상고인이 주장하는 상고이유에 위 각 호중 하나의 사유가 포함되어 있고, 그 주장이 받아들여 질 경우 판결의 결과가 달라질 수 있는 경우만 심리가 속행되고, 나머지 사건은 심리불속행 기각 판결의 대상이 됩니다.

심리불속행 기각을 할 수 있는 기간

심리불속행 기각 판결은 대법원이 2심 법원으로부터 소송기록을 받은 날부터 4개월 이내에만 할 수 있습니다(상고심법 제6조 제2항).

상고장은 2심 법원에 제출하여야 합니다. 상고장을 받은 2심 법원은 소송기록을 정리하여 대법원으로 보냅니다. 대법원은 소송기록을 받게 되면 당사자들에게 소송기록 접수통지를 하여 줍니다. 소송기록 접수통지를 받고 대법원 나의사건 검색을 통해 사건검색을 하면 대법원에 소송기록이 도착한 날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소부 내의 의견 일치

대법원 내에는 법원행정처장을 제외한 나머지 대법관들로 구성되는 전원합의체와 3인 이상의 대법관으로 구성되는 3개의 소부가 있습니다. 대법원에 접수된 사건은 소부에서 심리합니다(대법원내 재판부 구성이나 심리 절차에 관하여는 이전 포스팅인 대법원 전원합의체란? 구성과 심리 절차를 참조 하시면 됩니다).

심리불속행 기각 판결은 소부에서 심리하는 사건만 대상이 됩니다. 소부 내 대법관 전원이 검토한 결과 심리불속행 기각 판결 대상이라는 것에 의견이 일치한 경우에만 심리불속행 기각 판결을 할 수 있습니다(상고심법 제6조 제1항). 소부 내에서 1인의 대법관이라도 이의를 제기하는 경우 심리불속행 기각 판결을 할 수 없습니다.

심리불속행 기각 판결과 일반 상고기각 판결과의 차이

판결 선고 여부

판결 선고는 법정에서 이루어집니다. 법정에서 재판장이 사건의 결론인 ‘주문’을 낭독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집니다. 대법원에서 선고하는 판결 역시 공개된 법정에서 재판장이 판결의 주문을 낭독하는 방식으로 선고를 합니다.

그러나 심리불속행 기각 판결의 경우 명칭은 판결이지만 법정에서 선고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별도로 판결선고일이 지정되지 않습니다. 당사자의 입장에서는 어느날 갑자기 심리불속행 기각되었다는 판결문을 받게 됩니다.

판결문의 이유 기재 여부

심리불속행 기각 판결의 가장 큰 특징은 판결문에 이유가 없다는 것입니다.

판결문에는 주문이 정당하다는 것을 인정할 수 있을 정도로 당사자의 주장, 그 밖의 공격ㆍ방어방법에 관한 판단을 적어야 합니다(민사소송법 제208조 제2항). 그러나 심리불속행 기각 판결문에는 이유를 적지 않아도 됩니다(상고심법 제5조 제1항).

심리불속행 기각 판결에는 ‘상고이유를 이 사건 기록 및 원심판결과 대조하여 살펴보았으나 상고이유에 관한 주장은 ‘상고심절차에 관한 특례법’ 제4조 제1항 각 호에 정한 사유를 포함하지 않거나 받아들일 수 없는 것으로 판단된다. 그러므로 상고를 기각하기로 하여, 관여 대법관의 일치된 의견으로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라는 형식적인 이유만 써있습니다.

판결 확정일

일반적인 상고기각 판결의 경우 법정에서 상고기각 판결이 선고되면 판결이 그대로 확정됩니다. 대법원 판결에 대해서는 항소라는 개념이 없으므로 곧바로 확정이 됩니다.

심리불속행 기각 판결의 경우에는 선고 절차가 없습니다. 대신 판결문이 상고인에게 송달이 되면 효력이 발생합니다(상고심법 제5조 제2항). 확정일도 상고인이 판결문을 송달받은 날이 됩니다.

인지대의 환급

심리불속행 판결이 내려지는 경우 상고할 때 냈던 인지대의 50%를 반환하여 줍니다. 상고할 때 냈던 인지대가 20만원 미만인 경우에는 10만원을 공제하고 나머지만 환급이 됩니다. 환급계좌를 미리 제출한 경우에는 별도 신청 없이 환급계좌로 반환이 됩니다.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환급신청을 하여야 합니다.

심리불속행 기각 제도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판단

심리불속행 기각 제도는 여러 차례 위헌성이 문제되었고 지금도 논란이 있습니다.

상고인의 입장에서는 대법원 판단을 받기 위해 비용과 수고를 들여 상고를 합니다. 그런데 심리불속행 기각 판결이 내려지는 경우 어느날 특별한 이유가 적혀있지 않은 두 세장 정도의 판결문을 받고 사건이 그대로 종결되기 때문입니다.

모든 대법원 상고 사건에 관하여 재판연구관이 배정되어 검토가 이루어지고, 소부 소속 대법관들의 합의를 거쳐 심리불속행 기각 판결이 내려지고 있습니다(2022년 이루어진 대법원 소속 재판연구관들 인터뷰 참조). 그러나 판결문에 사실상 아무런 내용이 없으므로 상고인 입장에서는 자신의 주장을 제대로 검토한 것인지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헌법재판소는 여러 차례 심리불속행 기각 제도의 위헌성에 대하여 판단하였습니다. 헌법재판소는 아래와 같은 이유로 심리불속행 제도는 헌법에 반하지 않는다고 판단하였습니다.

심리불속행제도는 남상고 사건에 대한 신속한 처리를 통하여 당사자의 재판을 받을 권리를 충실히 하기 위한 제도로서 그 입법취지 및 규정내용 등에 비추어 충분히 합리성이 인정된다. 이러한 입법취지 등을 고려하여 특례법 제5조 제1항에서는 판결에 이유를 기재하여야 한다는 민사소송법 제208조의 특칙으로서 심리불속행 재판의 판결이유를 생략할 수 있도록 규정한 것이다.
한편 심리불속행 상고기각 판결에 이유를 기재한다고 해도, 당사자의 상고이유가 법률상의 상고이유를 실질적으로 포함하고 있는지 여부만을 심리하는 심리불속행 재판의 성격 등에 비추어 현실적으로 특례법 제4조의 심리속행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정도의 이유기재에 그칠 수밖에 없고, 나아가 그 이상의 이유기재를 하게 하더라도 이는 법령해석의 통일을 주된 임무로 하는 상고심에 불필요한 부담만 가중시키는 것으로서 심리불속행제도의 입법취지에 반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으므로, 특례법 제5조 제1항이 재판청구권 등을 침해하여 위헌이라고 볼 수 없다.

2013헌마174

다만 헌법재판소의 결정에는 소수의견도 있었습니다. 소수의견은 심리불속행 기각 제도 자체가 위헌은 아니지만 심리불속행 기각 판결문에 이유를 적지 않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은 위헌이라고 보았습니다. 일부 헌법재판관들은 “대법원의 심리불속행 상고기각 판결에 대해서 그 이유를 전혀 기재하지 않을 수 있도록 함으로써, 그 판결이 과연 적정한 것이었는지, 혹시 상고인의 주장에 대한 판단을 누락하였거나 잘못 판단한 점은 없는지 등에 대해 살펴볼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고 있으므로, 상고인의 재판청구권을 침해할 소지가 있다.”는 의견을 밝혔습니다.

심리불속행 제도 폐지에 관한 대법원 개정의견

대법원 2023년 1월 국회에 상고심사제를 도입하는 것을 전제로 심리불속행 제도를 폐지하고, 대법원 4명을 증원하는 입법의견을 제출하였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링크된 보도자료를 통하여 확인할 수 있습니다.

심리불속행 기각 판결로 종결되는 사건의 비율

2023년 상반기(1월부터 6월까지) 대법원에서 처리된 민사 본안사건 6,247건 중 4,442건에서 심리불속행 기각 판결이 선고되었습니다. 비율로 계산하면 71%입니다. 2022년 민사본안 사건의 심리불속행 기각 비율은 69.3%, 2021년은 72.7%였습니다.

행정 본안사건의 경우 2023년 상반기 동안 1,959건이 처리되었는데, 그중 1,473건에서 심리불속행 기각 판결이 선고되었습니다. 비율로 계산하면 75.2%입니다.

가사 본안사건의 경우 2023년 상반기 동안 343건이 처리되었는데, 그 중 295건에서 심리불속행 기각 판결이 선고되었습니다. 비율로 계산하면 86%입니다.

보다 자세한 내용은 아래 기사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구체적 이유도 없이 ‘패소’… 대법원 사건 70%가 심리불속행 기각, 한국일보, 2023년 10월 8일, 이정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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